알고리즘이 정한 궁금증, 나는 정말 내가 원해서 클릭한 걸까
어릴 적 비디오 가게 아저씨는 왜 낯선 영화를 던져줬을까
동네 비디오 가게에 가면 아저씨는 항상 물었습니다.
"이번엔 어떤 거 좋아하는 걸로 줄까?"
나는 진열대의 비디오테이프를 하나하나 넘겨보다 손이 가는 대로 골랐습니다.
가끔은 아저씨가 "이거 진짜 재밌어" 하며 툭 던져준 낯선 영화가 인생 영화가 되기도 했죠.
그때의 선택은 느렸지만, 분명 내 손끝과 내 의지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이미 수많은 추천 목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원하는 걸 찾은 게 아니라, 화면에 이미 준비된 것 중 하나를 고르고 있을 뿐입니다.
| "왼쪽의 먼지 쌓인 VHS 선반에서 손으로 고르던 그 느린 선택이, 오른쪽의 빛나는 스마트폰 속 추천 목록으로 어떻게 바뀌었을까?" |
알고리즘은 원래 무엇이었고, 언제부터 사람 마음을 읽기 시작했을까
'알고리즘'이라는 말은 9세기 페르시아 수학자 알콰리즈미(Al-Khwarizmi)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원래는 라면 끓이는 법처럼 정해진 절차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초창기 인터넷 알고리즘도 단순했습니다.
"A를 검색하면 A가 포함된 문서를 보여준다"는 일방향 규칙 하나였죠.
지금은 다릅니다.
검색창에 아무것도 치지 않았는데도, 말로만 나눴던 주제나 잠깐 시선이 머물렀던 상품이 홈 화면에 떠 있는 경험을 다들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알고리즘은 이제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유튜브는 왜 조회수 대신 '시청 지속 시간'을 기준으로 삼았을까
2012년 이전 유튜브는 조회수와 자극적인 썸네일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클릭 후 금방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평가 기준을 바꿨습니다.
바로 '시청 지속 시간(Watch Time)'입니다.
이 기준이 뜻하는 건 단순합니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줍니다.
몸에 좋은 샐러드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실제 손가락과 눈동자가 멈추는 곳은 자극적인 콘텐츠 쪽일 때가 많습니다.
알고리즘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추적합니다.
유튜브 시청 시간의 상당 부분이 검색이 아닌 추천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이런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영상 대부분은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골라준 것'에 가깝습니다.
알고리즘은 왜 하필 분노와 공포를 자꾸 추천할까
인간의 뇌에는 긍정적인 정보보다 위협이나 부정적인 정보에 훨씬 강하게 반응하는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 있습니다.
MIT 연구진이 트위터(현 X)의 확산 패턴을 분석한 결과,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약 6배 빠르게 퍼진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사실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붙잡아 두는가가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이 과정은 반복될수록 강도가 세집니다.
- 자극적인 영상을 클릭한다
- 뇌의 보상 회로가 도파민을 분비한다
- 도파민은 '만족'이 아니라 '갈망'의 호르몬이라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 가벼운 뉴스에서 시작해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옮겨간다
창작자들도 이 구조 안에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은 왜 점점 안 보일까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 계속 보여줍니다.
그 결과 나와 비슷한 생각만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상태, 이른바 '에코챔버(Echo Chamber)'에 갇히게 됩니다.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가끔 낯선 장르를 던져주던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지금의 알고리즘은 낯섦보다 익숙함의 반복을 선택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점점 낯설게, 때로는 적처럼 느껴지는 현상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토끼굴에 빠지면 뇌는 어떻게 변할까
가벼운 마음으로 영상을 보다가 몇 시간 뒤 전혀 다른 주제의 영상을 보고 있는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이를 '토끼굴(Rabbit Hole)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짧고 강렬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복잡하고 깊이 있게 사고하는 힘이 약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1분짜리 숏폼은 한 시간도 거뜬히 넘기면서, 책 한 권 읽는 건 유난히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노예에서 주인이 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설계를 이해했다면, 이제 알고리즘을 역이용할 차례입니다.
1. 관심 없음을 적극적으로 누르기
자극적이고 무의미한 영상이 뜨면 점 세 개 아이콘을 눌러 '관심 없음' 또는 '채널 추천 안 함'을 선택하세요.
알고리즘에게 내 취향의 기준을 다시 알려주는 행위입니다.
2. 일부러 반대되는 관점 검색하기
추천해주는 영상만 보지 말고, 나와 다른 시각의 키워드를 직접 검색해서 끝까지 시청해보세요.
알고리즘의 예측 경로를 벗어나야 필터 버블이 깨집니다.
3. 시청 기록을 잠시 꺼두기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는 시청 기록 저장을 잠시 끄세요.
휴식용 데이터가 학습 데이터로 섞이지 않아야, 공부할 때와 쉴 때가 명확히 구분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궁금증은 정말 내 것이었을까
비디오 가게 아저씨의 낯선 추천이 인생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내가 여전히 선택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다음 영상을 누르기 전에, 잠시 화면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지금 내 손끝을 움직이게 한 이 궁금증, 정말 내 것이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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