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돌집 |
골목길 빨간 벽돌집의 추억
70~80년대 대한민국 주택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실루엣이 있다. 마당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투박한 외부 계단이 놓인 '빨간 벽돌집'이다. 당시의 주거 공간은 미장공들이 현장에서 흙을 개고 벽돌을 하나하나 손으로 쌓아 올린,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노동의 결과물이었다. 집 한 채를 짓는 데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는 시간이 걸렸고, 날씨와 인부의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크게 갈리던 시절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주거 공간은 공장에서 방을 규격화해 찍어낸 뒤 현장에서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는 '모듈러 주택(Modular Home)'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 전통 건축 |
아날로그 건축이 부딪힌 한계
전통 건축 방식은 오랫동안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해 왔지만, 현대에 들어서며 뚜렷한 한계에 부딪혔다. 현장 중심 공사는 막대한 건설 폐기물을 만들어냈고, 인건비 상승과 숙련 인력의 고령화로 공사 기간과 비용을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층간소음과 회색빛 아파트 단지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다시 단독주택을 꿈꾸기 시작했지만, "집 한 번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처럼 아날로그 건축 특유의 스트레스가 여전히 큰 장벽이었다.
| 모듈러 건축 |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집
이 한계를 깨뜨린 게 모듈러 주택 기술이다. 모듈러 건축은 '현장 시공'을 '공장 제조'로 바꿔놓았다. 로봇과 디지털 자동화 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골조, 외벽, 창호, 단열재는 물론 화장실 변기와 싱크대까지 전체 공정의 70~80%를 미리 만든다(이를 사전제작, Prefabrication이라 부른다). 날씨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에서 밀리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제작되기 때문에, 사람 손으로 지을 때 흔했던 누수나 단열 불량 같은 하자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이 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고양창릉, 남양주왕숙2 같은 3기 신도시 사업에 중고층 모듈러 주택을 도입 중이고, 연간 3,000호 규모의 모듈러 공공주택을 꾸준히 발주할 계획이다. LG전자가 최근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에 모듈러 주택을 기증한 사례도 있었는데, 재난 상황처럼 속도가 중요한 순간에 이 공법이 갖는 장점을 잘 보여준다.
| 블록 조립 |
레고처럼 조립하는 집
공장에서 완성된 모듈 상자들은 대형 트레일러로 부지까지 옮겨진 뒤, 크레인을 이용해 며칠 만에 레고 블록처럼 조립된다. 기초 토목 공사와 공장 제조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국토교통부와 업계 자료에 따르면 공사 기간이 기존 방식 대비 20~30%가량 단축되고, 조건에 따라 최대 50%까지 줄어드는 사례도 있다. 현장 소음과 먼지가 줄어드는 건 물론, 규격화된 자재를 쓰다 보니 건설 폐기물도 크게 준다. 다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사례 연구에 따르면, 모듈러 공법은 설계·인력·운송 단계에서 오히려 기존 방식보다 비용이 1~10%가량 더 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초기 설비 투자 비용이 크고, 아직 국내엔 관련 법과 기술 인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도 업계가 지적하는 과제다.
| 모듈러 주택 |
디지로그 시대, 주거가 나아갈 방향
70~80년대 빨간 벽돌집이 주던 따뜻한 감성과 이웃 간의 정취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향수로 남아 있다. 모듈러 주택은 이 아날로그적 주거의 로망을, 가장 정밀하고 효율적인 디지털 기술로 다시 구현해내는 도구에 가깝다. 물론 비용과 제도 정비라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벽돌을 쌓던 손끝의 감각이 공장 로봇 팔의 정밀함으로 옮겨간 지금, 모듈러 주택은 기술이 우리의 주거를 얼마나 더 빠르고 안전하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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