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상징에서 거치대의 추억으로: 아이나비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지도책을 걷어낸 그날


명절마다 뒷좌석엔 두툼한 전국 도로 지도책이 실려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그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길을 안내하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중반, 미군이 독점하던 GPS 기술이 민간에 풀리면서 자동차 안에서 조용한 변화가 시작됐다. 완성차 업체가 옵션으로 내놓은 CD 기반 순정 내비게이션은 차값의 10~20%나 되는, 200만 원 안팎의 값비싼 장비였다. 정밀도는 낮았고 그래픽도 투박했다. 그런데도 대시보드 한가운데 박힌 그 화면은 부의 상징이자 첨단의 증거로 통했다. 도로가 새로 뚫릴 때마다 수십만 원을 들여 CD를 갈아야 했으니,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치대 전성시대, '아이나비'라는 이름


2000년대 중반, 판이 뒤집힌다. 팅크웨어의 '아이나비'를 앞세운 포터블 내비게이션이 등장하면서다. 유리창에 붙이는 이 작은 기기는 값도 합리적이었고, SD카드로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방식도 훨씬 간편했다. 순정 옵션은 순식간에 밀려났다. 국내 지형에 최적화된 정밀도 덕분에 아이나비는 점유율 1위를 지켰고, 어느새 '내비게이션'이라는 말 자체가 아이나비를 뜻하게 됐다. DMB와 실시간 교통정보(TPEG)까지 더해지면서, 귀성길엔 없어선 안 될 물건이 됐다.





스마트폰이 판을 바꿨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9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시장은 다시 흔들린다. 통신사 데이터를 활용한 '티맵', '카카오내비' 같은 무료 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거치형 기기는 PC에 연결해 지도를 내려받아야 했지만, 앱은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최신 도로와 우회 경로를 알려줬다. 여기에 순정 내비게이션의 부활,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 같은 연결성 강화까지 겹치면서 전용 단말기 시장은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블랙박스로, 로봇청소기로


스마트폰 하나가 내비게이션과 MP3, 전자사전까지 다 흡수해버리는 흐름 속에서도 아이나비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엔 PMP와 전자사전으로 영역을 넓혔고, 2010년대 들어서는 주력을 차량용 블랙박스로 빠르게 옮겨 점유율 1위 자리를 다시 찾았다. 이후로도 전동킥보드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 액션캠과 짐벌, 최근엔 로봇청소기와 소형가전까지 — 아이나비 프리미엄 스토어를 통해 하나씩 선을 보이며 몸집을 바꿔왔다.





결국 살아남는 건 바뀔 줄 아는 쪽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주력 사업 하나가 통째로 흔들리는 위기 앞에서, 1등 단말기 기업이었던 아이나비(팅크웨어)가 택한 길은 처절한 전환이었다. 도로 위 왕좌는 내려놓았지만, 블랙박스와 레저·생활가전·모빌리티로 영역을 넓히며 버텨냈다. 한때 독보적이던 기술도 패러다임이 바뀌면 순식간에 밀려난다. 그리고 그 뒤엔 늘, 끊임없이 바뀔 줄 아는 자생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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