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명절 풍속도: 차례상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안부를 묻는 시대

국민 3명 중 2명이 차례를 접은 지금, 명절은 무엇으로 남아 있는가


어릴 때 명절은 계산이 필요 없는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 형제와 어색함도 잠시, 금세 다시 친해져 마당을 뛰어다녔습니다. 할아버지 손에서 나오던 빳빳한 지폐 몇 장, 그 액수보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더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명절 오후, TV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같은 명절특집 영화 보던 그 시간도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농촌진흥청이 수도권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올해 설에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이 63.9%로 나타났습니다. 1년 전(51.5%)보다 12.4%포인트나 급증한, 조사 이래 최고치입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는 "차례나 제사를 지내겠다"는 응답이 35%에 그쳤습니다. 어릴 적 당연했던 그 풍경이, 이제는 국민 3명 중 2명에게 낯선 일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왼쪽은 편의점 모듬전 포장팩과 접시에 담긴 전, 오른쪽은 간소한 미니 제기 세트에 차려진 현대식 차례상의 대비를 담은 따뜻한 수채화
음식을 직접 만들기보다 일부는 사서 채우는 방식.



세대마다 다른 명절의 얼굴


30대 이하 응답자의 54%는 "따로 사는 친척을 만나지 않고 조용히 쉬겠다"고 답했습니다.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과반을 넘긴 수치입니다. 반면 기혼자의 79%는 여전히 가족 만남을 계획했지만, 미혼자는 56%에 그쳤습니다.


같은 명절을 두고 세대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입니다.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에게 명절은 당연히 모이는 날이었지만, 개인의 선택과 행복을 우선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에게는 "굳이 왜"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느 쪽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각자가 배우고 익힌 삶의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차례상보다 무거운 것들


차례를 지내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여행 계획'이 32.7%로 가장 많이 꼽힙니다. 그다음이 종교적 이유(25.4%), 차례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25.0%) 순입니다. 흥미로운 건 '경제적 부담'이라 답한 비율은 2.7%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명절이 괴로워진 진짜 원인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양극화와 개인주의가 고착화되면서 친척 모임이 **'서로를 검열하고 비교하는 자리'**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식 취업 자랑, 새 차 자랑, 아파트 평수 자랑이 이어지는 동안, 준비되지 못한 이에게 명절은 시기와 질투, 자괴감을 견뎌내야 하는 자리가 됩니다. 20대에게는 취업 압박, 30대에게는 결혼과 출산 질문, 40대에게는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는 현상은 '안부'라는 탈을 쓴 '정서적 침범'입니다. '잔소리 메뉴판'이라는 풍자 문화가 유행할 만큼, 현대인들에게 대가족 모임은 심리적 인구밀도가 과화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공간이 되었습니다.


1인 가구 비율이 30%를 넘어선 2026년의 인구 구조에서 수십 명의 친척이 모이는 유교적 관습은 이미 수명을 다했습니다. 중소기업 10곳 중 4곳(40.2%)이 설 상여금을 아예 지급하지 못하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 하나 살기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명절은 '관계의 의무'가 아닌 '개인의 생존과 휴식'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것


모두가 명절을 떠난 건 아닙니다. 차례를 지내는 가정 중에서도 84.5%는 "과거보다 간소화됐다"고 답했습니다. 음식을 줄이고, 일부는 사서 채우고, 형식은 가벼워졌지만 자리는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어느 60대 응답자는 "몸은 편해졌지만 명절이 조금 조용해진 느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아쉬움과 안도가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명절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꾸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지 모릅니다. 장시간 운전하면서까지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보내던 방식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안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요. 영상통화로 얼굴을 보고, 명절 전후로 시간을 맞춰 따로 만나는 가족들도 늘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느꼈던 명절의 온기는 사실 차례상이나 세뱃돈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이 반가워서 지었던 웃음, 그 짧은 순간들이었습니다. 형식이 사라져도 그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닐 겁니다. 다만 이제는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을 각자, 그리고 함께 다시 찾아가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스마트폰으로 한복 입은 가족의 영상통화를 보며 손을 흔들며 웃는 따뜻한 수채화, 뒤에 귤과 복주머니가 놓인 명절 풍경
"차례 형식은 사라져도, 얼굴 보고 안부 묻는 마음은 남는다. 영상통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명절의 모습"



📌 요약 및 함께 생각해볼 이야기 (FAQ)


요약

2026년 설 차례 미실시 응답이 63.9%로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30대 이하의 54%는 친척을 만나지 않고 쉬겠다고 답해 세대 간 온도차가 뚜렷했습니다. 경제적 부담보다는 여행 계획과 차례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응답이 더 많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세대 간 갈등과 비교에서 오는 피로감도 상당한 몫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명절이 사라진다기보다, 그 형식과 표현 방식이 각자에게 맞게 바뀌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Q1.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A1. 여행 계획(32.7%)이 가장 많았고, 종교적 이유(25.4%)와 차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25.0%)가 뒤를 이었습니다.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든 응답은 2.7%에 그쳤습니다.


Q2. 세대에 따라 명절을 대하는 태도가 왜 이렇게 다른가요?

A2.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와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30대 이하의 54%가 친척을 만나지 않고 쉬겠다고 답한 것도 이런 세대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Q3. 차례를 지내는 가정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요?

A3. 차례를 지내는 가정의 84.5%가 과거보다 간소화됐다고 답했습니다. 음식 가짓수와 양을 줄이고, 일부는 직접 조리 대신 구매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낮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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