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선 촉법소년 연령 논란: 소년범죄 처벌 강화와 연민의 자리


최신 한국 중학교 교실, 중앙 교탁 위에 공정과 존중이 적힌 칠판을 배경으로 법의 저울이 거대한 연기 실루엣으로 떠 있고, 왼쪽 저울 접시에는 학생이, 오른쪽 접시에는 선생님이 반투명한 실루엣으로 마주 앉아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
"완벽하지 않았지만 정이 있었던 그 시절 교실과 달리,
지금은 공정과 존중이라는 단어 아래 법의 저울만이 교탁 위에 아른거린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교실 풍경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낯설고 서늘한 공기가 감돕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는 조심스러운 경계가 생겼고, 친구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교실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지나친 체벌도 있었고, 교사의 권위가 무겁게 짓누르던 순간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온 동네가 아이를 함께 키우던 온기



그 시절 학교 밖은 또 하나의 큰 울타리였습니다. 부모님이 늦은 퇴근이나 회식으로 집을 비운 날에도, 아이들은 옆집 친구네 밥상에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온 동네가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표현은 매일 저녁 실제로 벌어지는 우리네 풍경이었습니다. 골목에서 놀다 넘어지면 지나가던 어른이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잘못을 하면 부모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서서 타일러주던 시대였습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없다는 것, 친구에게 양보하고 조율해야 함께 놀 수 있다는 것. 교과서가 아닌, 따스한 공동체 안에서 몸과 마음으로 익힌 가치들이었습니다.



90년대 골목길 노을 아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 술래가 벽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은 사이 다양한 동작으로 멈춰 선 아이들과 대문 앞에서 밥 먹자고 손짓하는 할머니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골목길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해가 질 때까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달리던 아이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웃음이 묻어있고,
대문 앞에서 밥 먹으라고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노을처럼 따뜻하게 퍼지던 그때."






'촉법소년'이라는 이름의 그늘: 언제부터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나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울타리는 조용히 해체되었습니다. 과거의 억압과 체벌을 겪었던 세대가 부모가 되며 "내 아이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과 소자녀 환경이 맞물렸고, 공동체의 돌봄은 각 가정의 과보호로 대체되었습니다. 타인과 부대끼며 조율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잃은 아이들 사이에 잔혹한 일탈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제도의 뿌리는 1953년 형법이 정한 형사미성년자 기준(14세)에서 출발해, 1958년 소년법 제정과 이후 개정을 거치며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성숙한 아동에게 형사처벌 대신 교화의 기회를 주자는 선의에서 시작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며 SNS와 미디어의 발달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점을 악용한 중학생들의 렌터카 무면허 운전 사고, 동급생 잔혹 폭행, 교사에 대한 폭언 및 침해 사건 등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며 급격한 경각심이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2020년 발생한 '대전 렌터카 무면허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어리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여론이 폭발했습니다. 법을 가림막 삼아 "어차피 처벌 안 받는다"며 비웃는 일부 아이들의 모습은, 법과 제도가 '연민과 책임'을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었습니다.



밝은 아파트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혼자 밥을 먹는 아이, 뒤에는 오피스룩을 입은 아빠는 의자에 앉고 엄마는 서있는 투명한 실루엣으로 부모님의 부재와 맞벌이 가정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늦은 퇴근과 회식으로 빈 의자만 남은 식탁,
아이는 스마트폰 불빛 아래 혼자 밥을 먹는다.
바쁜 일상 속 부모님의 빈자리를 법과 제도로만 채울 수 있을까?"




법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촉법소년 범죄와 교권 추락 논란을 볼 때마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집니다. 누군가는 법의 허점을 탓하고, 누군가는 형사 처벌 연령을 낮추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물론 악용되는 제도는 시대에 맞게 개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짜 사라진 건 법조항 하나가 아니라, '온 동네가 함께 지켜보고 함께 책임지던 관계망과 사람에 대한 연민'입니다.


법과 제도는 최소한의 통제 수단일 뿐, 그 안을 채우는 온기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결국 '사람'



기술은 놀랍도록 편리해졌고, 아이들은 검색 버튼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엄격한 법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옆집 어른의 따뜻한 잔소리 한마디


골목에서 부대끼며 배운 양보와 배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안도감과 연민


과거의 권위주의나 과도한 체벌 시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그 시절 우리가 무심코 누렸던 '함께 키운다'는 감각,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어린 연결을 다시 한번 그리워해봅니다.


지식은 디지털이 채워줄 수 있어도, 사람에 대한 존중과 연민은 결국 '사람 곁'에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디지로그의 글


🔗 공중전화와 삐삐, 그 시절의 설레는 기다림


🔗 거실 위의 가족사진과 사라진 동네 사진관: 디지털에 지운 아날로그 행복의 상징

Post a Comment

다음 이전